시민 동영상 통해 거짓말 드러나 흑백갈등 확산 가능성해당 경찰 즉각 해고하고 FBI-법무부 별도조사 착수
지난해 ‘퍼거슨 사태’로 촉발된 미국의 흑백 갈등이 여전한 상황에서 또다시 백인 경찰이 비무장 흑인을 총격 살해한 사건에 미국 내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사건이 발생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州) 노스찰스턴 경찰 당국은 해당 경관을 즉각 해임하는 등 진화에 서두르고 있지만, 성난 주민들의 항의시위가 이어지고 있어 자칫 흑백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8일(현지시간) AP통신과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에 따르면 백인 경관 마이클 토머스 슬레이저(33)가 비무장 상태였던 흑인 월터 라머 스콧(50)을 총으로 쏴 숨지게 한 혐의로 전날 체포됐다.
당초 슬레이저는 스콧에게 전기충격기를 빼앗기고 몸싸움을 하다 어쩔 수 없이 권총을 발사한 것처럼 주장했으나, 등을 돌려 달아나는 스콧에게 정조준 자세로 무려 8발의 권총을 발사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사면초가에 몰렸다.
에디 드리거스 노스찰스턴 경찰서장은 기자회견에서 “동영상을 보고 역겨운 느낌을 받았다”며 슬레이저를 해임했다고 밝혔다.
키스 서메이 노스찰스턴 시장은 드리거스 경찰서장과 함께 숨진 스콧의 가족을 찾아가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백악관의 조시 어니스트 대변인도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동영상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며 오바마 대통령과 직접 이 사건을 논의하진 않았지만 이 영상을 이미 봤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법무부와 함께 이번 사건에서의 인권 침해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는 등 연방정부 차원의 발빠른 조치도 뒤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을 둘러싼 시민들의 항의 움직임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지난해 8월 미주리 주 퍼거슨 시에서 흑인 청년이 백인 경관의 총격으로 숨지고 한 달 뒤 뉴욕에서 흑인 남성이 경찰의 목조르기로 숨진 후 미 전역에서 일어난 격렬한 항의시위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노스찰스턴 시장과 경찰서장의 기자회견장에서 일부 시민들은 “이게 민주주의의 현 주소”, “시장은 물러나라”라고 외치며 거칠게 항의했다.
시청 앞에도 시위대 50여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고, 사망 장소 인근에 세워진 임시 추모비 앞에는 플라스틱 화환과 양초 10여개가 놓였다.
시위대는 지난해 퍼거슨 시위 당시 핵심 구호였던 ‘손들었으니 쏘지마’(Hands up, Don’t shoot)를 이번 사건의 상황에 맞춰 변형, ‘등 돌렸으니 쏘지마’(Back turned, Don’t shoot)라는 글귀와 구호를 외쳤다.
또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얼마나 더 많이 희생돼야’ 라는 플래카드도 등장했다.
하지만 희생자의 모친인 주디 스콧은 ABC 방송에 출연해 “이런 사건이 다른 사람에게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빈다”며 아들의 죽음이 대규모 시위로 이어지기를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부친인 월터 스콧 시니어는 NBC 방송에서 “마치 사슴을 사냥하려는 것 같았다”고 비난하면서도 “영상이 없었다면 이 사건이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혔을 것”이라며 진실 규명을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스콧 부부는 아들의 죽음과 관련해 노스찰스턴 시와 경찰 당국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변호사가 밝혔다.
소송이 벌어지면 사건의 남은 의문점을 둘러싼 팽팽한 줄다리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스콧이 총에 맞아 쓰러진 후 슬레이저를 포함한 경관들이 응급조치를 제대로 한 것인지, 사망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지 등을 놓고 논란이 불가피하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동영상에는 슬레이저가 테이저건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꺼내다가 땅에 떨어뜨린 후 권총을 뽑아들고 사격을 하는 과정에서 도망치는 스콧에게 ‘멈춰’ 또는 ‘항복하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없어 사격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또 시민의 제보를 통해 동영상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과연 경찰이 슬레이저를 체포할 의지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아직까지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영상 제보자가 누구인지, 영상이 경찰과 언론에 제보된 경위는 어떤지, 공개된 영상이 ‘풀버전’인지 등을 둘러싼 궁금증도 남아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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