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파리협정 탈퇴 후폭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한 데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립이 국내외적으로 심화하는 가운데 유럽연합(EU)과 중국이 협정 준수를 강조하기 위해 발표하려던 공동성명도 대가를 요구한 중국의 ‘변심’ 때문에 무산됐다. 글로벌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보다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세계열강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LA AFP 연합뉴스
사면초가 트럼프
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다운타운에서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 반대와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구호가 적인 플래카드를 들고 시청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날 LA를 비롯해 워싱턴DC와 뉴욕 등 미국 150여개 도시에서 반(反)트럼프 시위가 열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어김없이 골프장을 찾아 빈축을 샀다.
LA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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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협정 탈퇴 후 재협상을 추진하겠다고 했으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재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맞서는 등 국제적으로 사면초가에 빠진 상황이다. 특히 미 내부에서조차 트럼프 대통령을 고립시키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민주당 소속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주지사,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 등이 대학과 기업들과 연계해 연방정부와 별도로 파리 협정을 준수하기 위한 협의체를 결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운동을 후원하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지난 2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미국의 도시, 주, 대학들은 2025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26% 줄인다는 약속을 지킨다는 목표를 유엔에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브뤼셀 신화 연합뉴스
한발 빼는 中
리커창(가운데) 중국 총리가 지난 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도날트 투스크(오른쪽)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및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과 EU·중국 정상회담을 마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EU와 중국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 선언에 대응해 공동성명을 낼 예정이었지만 양측 간 통상 관련 이견 때문에 불발됐다.
브뤼셀 신화 연합뉴스
브뤼셀 신화 연합뉴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리 총리와 투스크 의장 간 회담에 앞서 열린 한 회의에서 “지난해 중국의 대(對)EU 투자는 77% 증가했지만 EU의 중국 투자는 25%가량 급감했다”며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 문제를 거론했다. EU는 중국의 태양전지판과 강철 등 값싼 수출품이 밀려 들어오자 반덤핑 조치를 취해 왔고, 이번 회담에서도 중국산 철강제품 덤핑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리 총리는 EU 측의 문제 제기를 일축하며 EU 측이 공동성명에 대한 반대급부로 세계무역기구(WTO)에서의 ‘시장경제국’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으면 공동 성명문 채택에 협조할 수 없다고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2001년 WTO에 가입했지만 아직 ‘비시장경제’ 국가로 분류돼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이 포기한 글로벌 정책의 수호자가 되겠다고 했지만 (자국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를 이행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일깨워 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2017-06-0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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