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 잔치…유도 맏언니 정경미 78㎏급 金 메치기

노장 잔치…유도 맏언니 정경미 78㎏급 金 메치기

입력 2014-09-23 00:00
수정 2014-09-23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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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 허리 디스크 딛고 2연패 “끝까지 포기 말라는 감독님께 감사”

여자 유도대표팀의 맏언니 정경미(하이원)가 끝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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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인천아시안게임 유도 여자 78㎏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정경미(가운데)가 22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기념 촬영 전 결승전 상대였던 북한의 설경(왼쪽)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2014 인천아시안게임 유도 여자 78㎏급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정경미(가운데)가 22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기념 촬영 전 결승전 상대였던 북한의 설경(왼쪽)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안주영 기자 jya@seoul.co.kr
올해로 스물아홉, 유도 선수로서는 환갑에 가까운 나이다. 2년 뒤 열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은 장담할 수 없다. 인천대회가 그의 마지막 아시안게임 무대일지도 모른다.

2010년 광저우대회에서 한 차례 아시아를 제패했던 정경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다. 그리고 다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좌우명은 ‘당장 변화가 없다고 포기하지 말자’다.

국가대표 선발전부터 고질적인 허리 디스크로 고생했다. 대표팀에서는 후배들을 다독이는 의젓한 그였지만 우승한 뒤 울고 말았다. 그는 “너무 아팠다. 힘들어서 (운동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다”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힘내라고 격려해 주신 (서정복 여자유도 대표팀) 감독님께 감사하다”고 마음을 전했다.

166㎝의 키에 81㎏의 다부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근력이 뛰어나다. 전북 무장초등학교와 영선중고교, 용인대를 거쳤다. 2008년 3월 하이원에서 실업 생활을 시작했다. 정경미는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었던 2003년 출전한 모든 국내 대회에서 우승해 전관왕을 달성했다. 이후 광저우아시안게임까지 승승장구했다.

2005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6년 세계대학생선수권대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했다. 이듬해 세계선수권에서 깜짝 동메달을 따내 유망주에서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동메달로 이름을 널리 알렸고 광저우아시안게임 정상에 오르며 선수 인생에 정점을 찍었다. 2012년 시련이 왔다. 주위의 기대가 독이 됐을까. 의욕적으로 나선 런던올림픽에서 1회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어느새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됐다. 그러나 정경미는 아시안게임 2연패라는 새 목표를 세웠다. 자신의 좌우명처럼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결국 한국 여자 유도의 새 역사가 됐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2014-09-23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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