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 담쟁이 덩굴_김성구] 이사 가는 날

[붉은 벽돌, 담쟁이 덩굴_김성구] 이사 가는 날

입력 2011-05-01 00:00
수정 2011-05-0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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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족은 다음 주에 이사를 갑니다. 12년 만입니다. 저희 네 식구 오순도순 살 만한 아담한 아파트로 옮기게 됐습니다. 마찬가지로 전세이긴 해도 새로 벽지를 바르고, 페인트도 칠하면서 살짝 마음이 들뜨고 있습니다. 결혼하고 이사 가는 게 물론 처음은 아닙니다. 여섯 번째입니다. 그런데도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색다른 느낌을 갖게 됩니다.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줄여 가는 것이라 남들이 보면 아주 좋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전 분명히 좋습니다. 우선 제가 사랑하는 북한산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아서 좋고, 회사에서 오히려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또 전망도 더 좋아 집주인 말로는 “봄엔 앞산 진달래가 끝내준다!”고 하니 기대가 큽니다. 거기다 관리비도 적고 전기, 가스 사용료도 당연히 줄어들 테니 이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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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아내의 마음은 편치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많은 ‘세월의 짐’들을 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저 버릴 것과 그 집에서 꼭 필요한 물건, 이렇게 둘로 딱 분류하면 될 텐데 뭘 그리 고민하지?’ 하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습니다. 잘 참았지요. 안 그랬으면 괜히 큰일 앞두고 부부싸움거리나 제공했겠지요. 대신 책이나 옷가지 등 내 물건은 내가 처리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발칵 뒤집으며 ‘정리’를 했습니다. 결과는 실패. 자꾸자꾸 버리고 싶지 않은 물건이 한쪽에 쌓여만 갑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나 ‘버리고 떠나기’까지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결혼한 지 25년이나 된 중년 부부이니 스님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요.

고민 끝에 저희 부부는 최종 결론을 내렸습니다. 신혼 때로 돌아가자. 그때로 돌아가 하나하나 다시 시작하자. 그런 마음을 먹으니 이상하게 짐 정리도 금세 간단해졌습니다. 반면 사랑도, 행복도 더 커질 것만 같은 포근함이 밀려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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