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풀풀 나는 어느 암행어사의 일기

사람 냄새 풀풀 나는 어느 암행어사의 일기

입력 2013-07-13 00:00
수정 2013-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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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21㎞ 이동…공무 수행 중에 틈틈이 명승지 유람하기도…서수일기/박래겸 지음/조남권·박동욱 옮김/푸른역사/219쪽/1만 8000원

암행어사 하면 지방 수령의 비리를 치죄하던 ‘박문수’가 떠오르지만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민정시찰이라는 본분을 다하면서도 적당히 현실과 타협한 암행어사도 있었다. 암행어사 일기는 15종으로 추정되는데 이 책은 후자에 관한 이야기다. 홍문관 부교리로 있던 저자는 43세이던 1822년 3월 16일부터 7월 28일까지 평안남도로 가 126일 동안 암행(暗行)하던 행적을 일기로 남겼다. 책에는 암행어사가 탐관오리를 혼내는 기록도 나오지만 암행어사의 풍속사, 생활사를 소개한 장면에 더욱 눈길이 간다.

저자는 임금으로부터 사목책(事目冊) 한 권, 마패(馬牌) 하나, 유척(鍮尺) 두 개를 하사받고 수행원 12명과 함께 추레한 행색으로 길을 떠난다. 4달 남짓 2654㎞에 이르는 4915리를 다녔으니 하루 21㎞를 이동한 셈이다. 평안도 지역의 21개 마을을 조사해 순안, 강서, 강동, 평양 등 모두 8곳에서 어사출두를 외친다. 암행어사 출두는 주로 높은 문이나 관아의 문 앞에서, 저물녘에 이루어졌다. 고을 노파로부터 수령의 이야기를 듣는 등 민심도 청취한다.

암행어사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보안이 가장 어려웠다. 5월 12일 일기를 보면 눈치 빠른 41살의 퇴기(退妓) 빙심(氷心)이 눈치를 채자 서둘러 자리를 뜨고, 역졸들에게 탐문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양, 파주, 장단 등 암행지역이 아닌 마을을 지나면서 수령들로부터 점심이나 저녁, 잠자리를 제공받았으니 아무리 옛날이라 해도 암행어사가 나간다는 소문은 새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공무 수행 중에도 명승지 유람 등 틈틈이 즐긴 기록도 나온다. 평양에 들어간 7월에는 기생 만홍(晩紅)과 객고를 풀고 다음 날에는 순찰사와 함께 배를 타고 부벽루에 오른 뒤 밤에 내려오지만 구름이 껴 애석하게도 달 구경은 못한다. 임무를 대충 끝냈기 때문에 평안도 순찰사가 접대를 한 것이겠지만 암행업무가 한창이던 5월 용강현에서는 수령이 보낸 기생과 잠자리를 함께 했으니 당시 암행어사의 도덕관은 상당히 무뎠던 것으로 보인다.

임태순 선임기자 stslim@seoul.co.kr

2013-07-1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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