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헤이 “조선에 투항하는 日병사 연기, 확실히 각오했죠”

료헤이 “조선에 투항하는 日병사 연기, 확실히 각오했죠”

입력 2014-08-07 00:00
수정 2014-08-07 14:06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영화 ‘명량’서 항왜 역할…”한일 가교 될만한 존재라는 말에 용기”

“1597년 9월 16일. (이하 중략) 왜인 준사는 안골포 적진에서 항복해 온 자이다. (준사는) 내 배 위에 있었는데, 바다를 굽어보다가 말했다. ‘그림이 그려진 붉은 비단 옷을 입은 자가 안골포 적진의 적장 마다시입니다’.”(이순신 ‘난중일기’ 중)

이미지 확대
명량해전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명량’에서 왜병으로 출연한 일본인 배우 오타니 료헤이. 료헤이는 현재 KBS 2TV 수목극 ’조선총잡이’에서도 열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명량해전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명량’에서 왜병으로 출연한 일본인 배우 오타니 료헤이. 료헤이는 현재 KBS 2TV 수목극 ’조선총잡이’에서도 열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명량해전 당시 이순신 장군의 배에는 항복한 왜병인 항왜(降倭) 한 명이 타고 있었다. 준사(俊沙)라는 이름의 그가 조선 수군에 넘겨준 정보들은 전세가 조선 쪽으로 기우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명량해전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명량’에서 준사로 분한 이는 일본인 배우 오타니 료헤이(34)다. 그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도 “던킨 도넛 CF에 나왔던 사람”이라고 하면 다들 무릎을 치는 바로 그 배우다.

이번 영화가 기록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이제 료헤이는 추억의 도넛 CF 모델에서 “’명량’의 준사”로 기억될 법하다.

영화 흥행을 즐길 새도 없이 드라마 촬영으로 바쁜 료헤이를 최근 서울 종로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한국어로 진행됐다.

료헤이는 ‘영화의 흥행 성적이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예상대로 아닌가요?”라면서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영화가 예상보다 훨씬 잘 됐죠. 영화가 흥행이 잘될 거라는 생각은 있었어요. 현장에서 카메라 감독님들도 (화면이) 정말 잘 나왔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김한민 감독님이라면 좋은 작품을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영화에서 드러나는 준사의 비중은 크지 않다. 하지만 비중에 비해 그의 연기 부담은 컸을 법하다. 한일 양국이 여전히 과거사를 두고 얼굴을 붉히는 상황에서 500년 전 인물이라지만 왜군과 대척점에 서서 싸우는 일본인 역할을 맡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준사 역할에 무척 매력을 느꼈어요. 그런데 사실상 스파이라는 것이 갈수록 마음에 걸렸습니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많이 걱정했어요. 일본인 친구들과 일본에 있는 제 가족뿐 아니라 한국인 친구들도 괜찮겠냐고 했죠.”

료헤이는 “대충 마음을 정리하면 안 될 것 같았다”면서 “뭔가 확실한 각오가 없으면 연기하다가 많이 흔들릴 것 같았어요. 확실히 정리하고 각오한 뒤 영화 촬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료헤이가 준사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영화 출연을 결심한 것은 그를 평소 ‘료’라고 부른다는 김 감독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그는 김 감독의 전작 ‘최종병기 활’(2011)에도 출연한 바 있다.

김 감독은 망설이는 그에게 먼저 ‘료, 부담되겠지?’라고 말을 꺼냈다고 했다. “료에게 부담될 거라 생각한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준사라는 인물 자체가 잘 연기하면 한일 양국의 가교가 될 만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게 김 감독의 설명이었다.

료헤이는 “감독님의 그 말이 제게는 큰 용기를 줬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준사를 잘 연기하자는 각오가 섰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준사는 왜군 장수인 와키자카 야스하루(조진웅 분)의 부하로 처음 화면에 등장한다. 이순신의 무도(武道)에 감복한 그는 첩자 역할을 하다가 결국 조선 수군에 합류한다.

준사의 결정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임진왜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료헤이에게 물었다.

”만약 준사가 그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면 오히려 일본편에 남았겠죠. 임진왜란은 침략전쟁이잖아요. 일본 편에서 싸우기 싫어서 조선에 가서 일본과 싸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전 봐요.”

료헤이는 이어 “임진왜란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또 부모님께서 제가 한국에 사는 이상, 임진왜란이 무엇인지, 일본이 한국에 어떤 일을 했는지 모르면 안 된다고 공부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의 흥행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한국에서의 제 연기활동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조금은 있는 것 같은데 일본에서도 ‘명량’이 이슈가 되면 앞으로 좀 걱정되는 부분은 있다”고 털어 놓았다.

시나리오에는 준사의 비중이 좀 더 컸고 실제 촬영한 장면들도 많았다고 했다. 료헤이가 한국어로 대사하는 장면들도 여러 번 찍었으나 ‘느낌이 준사답지 않다’는 감독의 결정에 따라 삭제됐다.

”편집을 거치면서 대사가 있는 부분들은 거의 다 날아간 것 같다”는 게 료헤이의 아쉬움이 묻어난 설명이다.

영화는 이순신 역의 최민식, 이순신 라이벌인 구루시마 미치후사 역의 류승룡 등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들로도 화면이 가득 찬다.

료헤이는 “선배들의 카리스마와 눈빛 연기를 보면서 나도 모든 걸 쏟자, 저들에 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강조했다.

이런 관록의 배우들에게도 명량은 녹록지 않은 바다였다. 특히 촬영을 앞두고 배우들은 한달간 액션스쿨에서 함께 맹훈련을 받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를 하면서 체력 하나는 자신 있다는 료헤이마저도 ‘못 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고된 훈련이었지만 전투장면을 촬영할 때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러나 료헤이는 촬영 도중 왼쪽 귀에 상처를 입었다. 살이 아물 때까지 한 달 정도 치료를 받아야 했던 큰 부상이었다.

료헤이는 “현장에 가기 전까지는 그렇게까지 싸우는 연기를 하게 될지 몰랐다. 다른 영화에서는 액션 연기의 합을 맞춘다고 하지만 우리는 합을 맞추는 게 아니라 진짜 서로에게 달려드니 막아야 하고 피해야 했다. 그러다 다쳤다”고 설명했다.

료헤이는 현재 KBS 2TV 수목극 ‘조선총잡이’에서 윤강(이준기)의 숨겨진 조력자인 일본인 가네마루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조선총잡이’는 현재 수목극 중 시청률 1위를 지키고 있다.

”제가 하는 드라마는 다 1위에요. 제 역할이 작기는 하지만요. (웃음). 이제는 드라마 현장이 많이 편해졌어요. 이준기 씨는 정말 피곤할 텐데 티를 안 내요. PD가 이만하면 괜찮다고 하는데도 이준기 씨가 오히려 다시 찍자고 해요. 톱스타인데 대기실로 직접 찾아와 제게 정확한 일본어 발음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데 그런 걸 보면서 저도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데뷔 8년차이지만 한국어 연기가 여전히 부담스럽다는 료헤이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함께 구사하는 한일합작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차가운 역할을 주로 맡아온 만큼 달콤한 로맨스물도 찍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료헤이는 수년 전 인터뷰에서 “운이 좋아 한국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촬영할 때마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에게 다시 물었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없어졌어요. 이제는 많은 걸 할 수 있겠다고 좋은 쪽으로 생각합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총 13조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하기로 하자 이를 둘러싸고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에 활기가 돌 것을 기대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소비쿠폰 거부운동’을 주장하는 이미지가 확산되기도 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