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주년 옌볜주’ 직접 가 보니
도시 외관·옷차림 등 한국과 비슷
“한 집 건너 한 집 돈 벌러 한국행”
공동체 해체… 이혼 등 부작용도
中, 소수민족 통합 정책 가속화
한중 협력 상징 옌볜과기대 폐교
한글 우선 표기 70년 만에 폐기

지난 3일로 창설 70주년을 맞은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주도(州都) 옌지의 아리랑광장에서 경축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날 옌지 곳곳에서 불꽃 축제와 문예 공연,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신화사 캡처
●‘가로수길’ 커피숍 등 친숙한 간판들
베이징에서 비행기로 2시간여를 날아 옌지공항에 도착하자 ‘연변 사투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공항 내 모든 안내문은 중국어와 한글이 병기돼 있었고, 직원들도 우리말로 승객 이동을 도왔다. ‘조선족의 서울’로 불리는 옌지에 도착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조선족의 서울’로 불리는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옌지 시내의 건물 간판. 한국의 여느 신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옌지 류지영 특파원

옌지의 번화가인 옌볜대 앞을 한복 차림의 여성들이 지나가고 있는 모습. 1949년 개교한 옌볜대는 한민족 계열 종합대학으로 중국에서 한국어와 중국어를 함께 쓰는 유일한 대학이다. 옌지 류지영 특파원
옌볜주는 19세기 이후 조선족이 모여 살던 옌지와 투먼, 룽징 등이 묶여 1952년 세워졌다. 별다른 제조업 시설이 없음에도 지금까지 분투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과의 무역·투자 확대, 한국 거주 조선족의 송금이 결정적이었다. 시인 윤동주가 태어난 룽징에서 만난 남모(70)씨는 “아내가 한국에 가서 일한 덕에 아파트를 장만했고 딸도 의사로 키울 수 있었다”며 “(옌볜에서) 한국에 돈 벌러 간 조선족이 한 집 건너 한 집꼴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선족의 한국 의존 심화는 공동체 해체 등의 부작용도 낳았다. 1990년대 이후 100만명이 넘는 이들이 해외로 떠나면서 부부 중 한쪽이 한국에서 생활하는 가정이 새로운 일상인 ‘뉴노멀’이 됐다. 불화로 인한 이혼이 급증했고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한 자녀들이 비행 청소년으로 전락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주도 옌지 시내 곳곳에 걸린 창설 70주년 환영 현수막. 옌지 류지영 특파원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주도 옌지 내 ‘핫플레이스’인 옌볜대 주변에서 중국인 여성들이 한복을 입고 나들이를 하고 있다. 최근 이 지역은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 문화를 간접 체험하는 한류 체험 관광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옌지 류지영 특파원
●“전통 가치관 보존 위한 교육 필요”
옌볜주는 1952년 설립 이래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하되 한글과 한자를 병기할 때는 한글을 우선 표기하도록 했으나, 지난 7월 한자를 먼저 적도록 규정을 바꿨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1000곳이 넘던 중국 내 조선족 초·중·고교는 200곳 정도만 남았다. 아예 자녀를 한족과 결혼시키고 그 2세를 한족으로 등록하는 ‘동화’ 현상도 늘고 있다. 황유복 베이징 중앙민족대학 교수는 “민족공동체 존망과 직결되는 전통 가치관 보존을 위한 민족언어·문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인 윤동주의 고향인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의 미식거리. 거리 전체에 한글 간판이 즐비하다. 룽징 류지영 특파원
2022-09-0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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