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108배/문소영 논설위원

[길섶에서] 108배/문소영 논설위원

입력 2014-08-12 00:00
수정 2014-08-1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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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에서 가장 비싸다는 수업료를 내고 사립대학을 다녔으나 백수였던 20대 중반. 세상에 패배했다고 낙심해 머리 깎고 절에나 들어갈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시달렸다. 나이는 어리지만 세상물정은 훨씬 잘 파악했던 동생이 “그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폐쇄된 집단이라 세상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해 흐지부지됐다. 불교 신자가 아니면서 그 무렵 아침에 일어나면 108배를 꽤 오랫동안 했다. 절하는 자세가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려는 노력인 하심(下心), 또는 집착을 일으키는 여러 인연을 놓아버리는 방하(放下)에 닿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교만하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보던 과거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려던 시절이었던 것도 같다. 그 몇 년 뒤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일반인 대상의 5박6일인가 ‘짧은 출가’를 보냈는데, 여름날 산사에서 새벽 3시에 일어나 도량을 돌고 예불로 108배를 할 때 몸에 익숙한 그 절을 하면서 참으로 속이 편했던 것 같다.

요즘 비뚤어진 마음이 아니라 살찐 몸을 교정하기 위해 절을 권한다고 한다. 20대의 싱싱한 무릎도 아닌데 마음이 좀 어지러워 108배를 시작해볼까 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2014-08-1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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