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갑순 동국대 회계학과 교수·한국납세자연합회장
최 부총리는 “결과적으로 세수가 들어오겠지만 이 부분은 금연 활동과 금연 캠페인을 늘리거나 하는 예산으로 집중 지원하고 국민 안전과 관련된 지출에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부총리의 발언은 정부가 늘어나는 세수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명확한 계획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모든 세금은 국민 행복과 복리 증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곳에 최우선적으로 쓰여야 한다. 세금에 공돈이란 있을 수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담배 관련 세금에 국세인 개별소비세를 포함시킨 안에 대해 비판한다. 건강증진이 담뱃세 인상의 진짜 목적이라면 늘어난 수입 대부분을 건강증진부담금으로 써야 맞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담뱃세 인상의 목적을 국민건강증진이라고 계속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담뱃세 인상이 세수 확보에도 목적이 있다고 하면, 서민증세라는 반대 여론이 거세질 것을 지나치게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정부는 이 부분에서 보다 솔직해져야 한다. 담뱃값을 2000원씩 올릴 때 추가로 더 걷게 되는 세금은 2조 8000억원에 이른다. 이 돈은 국민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에 쓰여야 한다. 흡연자에게서 걷은 세금이니 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논리는 세금의 본질에 비춰 옳지 않다.
소득에 대한 역진성이 강한 담뱃세와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이 양극화 문제의 해법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크게 비판받을 일임에 틀림없다. 정부가 이런 비판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음에도 이 시점에 담뱃세 인상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필경 세수 확보에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정부는 어렵게 걷어 들인 세수를 가장 필요하고 효과적인 곳에 사용할 대안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진심으로 설득해야 한다. 국민건강증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느라 금연 캠페인에 혈세를 쏟아 붓기보다는 부족한 복지예산 확충에 사용하는 것이 보다 올바른 선택이다.
현재 담뱃갑을 보면 앞뒤에 경고문구가 있다. 하지만 담뱃갑 어디에도 담배가격을 구성하는 담배공급가액, 담배소비세, 국민건강증진부담금, 지방교육세, 부가가치세, 폐기물부담금이 표시돼 있지 않다. 2500원을 전부 담뱃값으로 알고 내는 것과 실제 담뱃값은 38%인 950원이고 나머지 62%인 1550원이 각종 세금과 부담금이라는 사실을 알고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납세자가 담배를 살 때 자신이 부담하는 세금이 정확히 얼마인지 알아야 하는 것은 납세자의 권리이자 과세권자의 의무다.
정부는 담뱃세 인상의 근거로 한국의 담뱃값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싸다는 사실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OECD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세전세후 가격을 동시에 표시하거나, 세금 내역을 구분 표시하는 가격표시제를 하루속히 도입해야 한다.
이번 담뱃세 인상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보건복지 쪽이 아닌 최고위직 조세정책 담당자들조차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국민건강증진이라는 명분만을 내세우기에 급급하다는 점이다. 담배에 붙여 걷든, 술에 붙여 걷든 모든 세금은 납세자의 피와 살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014-09-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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