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심심하고 재미없는 ‘미국 인사청문회’/이경주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심심하고 재미없는 ‘미국 인사청문회’/이경주 워싱턴 특파원

이경주 기자
이경주 기자
입력 2021-07-18 17:40
수정 2021-07-19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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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주 워싱턴 특파원
이경주 워싱턴 특파원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각 구성이 진행되고 있다. 워낙 상원 인준 대상이 많고, 검증 과정이 치밀하고 꼼꼼하다 보니 시간이 걸린다. 가족까지 신상이 탈탈 털리고 자극적인 폭로가 이어지는 한국의 인사청문회가 ‘막장 드라마’라면 미국의 인사청문회는 ‘심심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우선 등장 인물 간 갈등이 덜하다. 여당에 정치적인 치명상을 입히려는 야당도, 이를 피하려고 억지를 부리는 여당도 보기 힘들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사기’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요즘은 여야 의원이 겸상도 안 하는 분위기라지만, 바이든 내각의 주요 지명자가 철회된 데에는 민주당 내부의 반발이 사실상 더 큰 영향을 주는 듯하다.

지난주 낙마한 하이디 크레보리디커 재무부 국제차관 지명자가 그런 사례다. 2012년부터 18개월간 힐러리 클린턴 국무부에서 첫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크레보리디커의 낙마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월가의 투자은행에서 일한 경력 때문에 민주당 내 극좌파의 반대가 컸다는 것이 워싱턴DC 정가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다.

지난 3월 트위터에 올린 막말로 낙마한 니라 탠든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 지명자는 공화당의 반발도 컸지만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최근 도덕성을 강조하며 프랭크 켄달 공군장관 지명자 등의 인준 과정을 멈춰 세웠고, 이들은 결국 퇴임 후 4년간 방산업체에 취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명자의 정치색보다 전문 능력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한국에서는 민주당 정치색이 강해 인준 청문회에서 고전할 거라는 분석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무난히 통과했다.

미국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1993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때 첫 여성 법무장관에 지명됐다가 불법체류자를 유모로 고용한 사실이 드러나 하차한 조 베어드의 ‘내니 게이트’는 지금도 회자된다. 대통령이 상원에서 반대한 인물을 상원의원들의 휴가철에 임명한 전례도 있다. 상원은 이후 이를 막으려 휴가철에 교대로 의사당에 나가 형식적으로 의회를 열었다 닫는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인사청문회에서 막장 드라마를 좀처럼 못 보는 이유는 치밀한 인사 검증 때문이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인사 검증 때 받는 미 행정부의 질문지(SF86)를 들여다보니 136쪽에 걸쳐 방대한 정보를 요구한다. 미 연방수사국(FBI)의 실사 검증도 추가된다. ‘2009년 한 연방판사의 인사 검증 파일에는 그가 담장 위로 넘어온 옆 집의 나무를 자른 것에 대해 불만을 품은 이웃의 증언까지 들어 있더라’는 얘기도 들었다. 친인척 문제나 교통범칙금 납부 등의 검증은 물론이고, 재산이나 세금 문제 등이 있다면 처분 및 납부 시한을 정하도록 하는 등 이미 비공개 검증 과정에서 불법 및 위법 소지를 차단한다.

그래서인지 언론이 경쟁적으로 도덕성 검증에 나서는 경우도 드물다. 거짓말이 밝혀졌을 때는 엄정하게 책임을 묻지만 기본적으로 인재를 신뢰하는 분위기가 있는 듯싶다.

반면 한국의 인사청문회에서는 인사 검증 부실로 종종 하자 있는 인재가 올라오고, 시스템상 이를 막을 수 없는 야당은 능력 대신 도덕성을 물어뜯으며 망신 주기로 대응한다. 이에 대한 급한 과제는 인사 검증 시스템의 강화일 테다. 다만 여야 간에 소통이 없다면 인사청문회를 ‘막장 드라마’에서 구할 수 없다. 미국도 어느 때보다 양당 대립이 첨예한데, 인준을 두고 상호 설득이 가능할까. 워싱턴에서 들은 답변은 “아니 그게 왜 안 됩니까”였다.
2021-07-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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