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요란한 소수, 조용한 다수

[마감 후] 요란한 소수, 조용한 다수

신진호 기자
신진호 기자
입력 2025-05-22 00:17
수정 2025-05-2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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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결의 원칙이 민주주의 꽃이라고 하는데, 요란한 소수가 조용한 다수를 지배한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장학금 후원자였던 김장하 전 남성문화재단 이사장이 최근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다. 질문을 받은 문 전 대행은 한참 망설이다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요란한 소수를 설득하고 다수 뜻을 세워 나가는 그런 체제를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이며, 이번 탄핵의 광장에서 시민들이 외친 그 목소리를 귀기울여 듣는 지도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김 전 이사장이 말한 ‘요란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념의 극단성을 가리킨 것일 수도 있고, 의견 표출의 정도가 사회 평균을 넘어섰다는 뜻일 수도 있다.

견해의 다양성을 가능한 한 보장하려는 민주주의하에서 이념적 측면의 요란한 소수는 필연적이다.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양극단은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란한 소수는 시끄럽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 이들은 위험을 먼저 알리는 ‘광산의 카나리아’ 역할을 한다. 또 이들은 대체로 먼저 행동에 나서고 다른 이들의 동참을 촉구하는데 이것이 사회의 변화를 끌어내기도 한다.

문제는 ‘지배한다’는 대목에 있겠다.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미디어의 추천 알고리즘은 극단적인 소수의 목소리를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 주는 발판이 됐다. 게다가 요란함이 더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구조에 요란함의 목적이 그 내용인지 돈인지 모를 지경까지 이르렀다.

기사 댓글창도 요란한 소수가 마치 공론장의 승자 지위를 획득한 것처럼 보이곤 한다. 조용한 다수는 댓글을 쓰지도, 추천을 누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요란한 소수가 공론장을 쩌렁쩌렁하게 채우는 일은 아고라 시절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공론장은 원래 그런 곳이다.

그렇다고 다수를 향해 왜 조용히 있느냐고 다그칠 순 없다. 저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챙겨야 할 생업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정 수준 이상의 민주주의를 이뤄 냈다. 조용한 다수는 투표를 통해 침묵을 깼고 투표 이상의 수단이 필요하다고 여기면 기꺼이 거리로도 나섰다.

요란한 목소리 중에 퇴행도 있지만 진보도 있다. 소수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한 동시에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은 문 전 대행의 말대로 ‘귀기울여 듣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다. 그는 그러한 지도자가 나타날 것이라며 희망의 화법을 썼는데 사실 이는 유권자의 몫이기도 하다.

요란한 소수에 떠밀리거나 그들을 이용하려 하는 지도자 대신 다양한 뜻을 모으려는 지도자, 그런 지도자를 알아보고 선택하는 유권자만이 요란한 소수가 조용한 다수를 지배하는 일을 막을 수 있겠다.

그러자면 적어도 선거일만큼은 모두가 요란해져야겠다.

신진호 뉴스24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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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호 뉴스24 부장
신진호 뉴스24 부장
2025-05-22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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