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정치적 사건과 정치적인 검찰/홍인기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정치적 사건과 정치적인 검찰/홍인기 사회부 기자

입력 2013-11-18 00:00
수정 2013-11-18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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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사건에는 정치적인 수사로 화답하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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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기 사회부 기자
홍인기 사회부 기자
검찰은 지난 15일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에 대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치권의 고소, 고발이 난무했던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검찰의 씁쓸한 행태가 재연됐다. 결과를 발표했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은 이유다.

이번 사건은 비슷한 시점에 수사에 착수한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의혹’ 사건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떠들썩하게 진행됐다. 디지털 자료 분석용 특수 차량까지 동원해 국가기록원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으로 수사에 착수한 데 이어 수사 과정에서도 잇달아 잡음이 흘러나왔다.

회의록 폐기 의혹과 관련해 문재인 민주당 의원을 소환 조사하면서 회의록 유출 피고발자인 새누리당 의원들은 서면 조사로 슬그머니 마무리하려다 ‘불공정·편파 수사’라는 비난을 받았다. 또 서면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수사 책임자의 거짓 해명도 불거졌다.

말 바꾸기 역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검찰은 지난달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 “초본과 수정본은 의미 있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검찰 브리핑은 ‘민감한 내용이 적힌 초본을 삭제하고 내용을 조작한 수정본을 만들었다’는 새누리당 주장에 힘을 실어 주면서 정국을 들썩였다. 그러나 지난 15일 최종 수사 결과 발표에서는 “초본과 수정본, 국정원본은 본질적인 내용에 차이가 없다”고 말을 바꿨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발표에서도 정치적인 고려가 엿보였다. 금요일 발표는 지난 6월 14일 국가정보원 대선·정치 개입 사건, 지난 9월 13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에 대한 감찰 지시에 이어 세 번째다. 모두 정치적으로 민감한 데다 청와대와도 직간접으로 관련돼 있는 사건이다.

검찰은 “특별한 의도는 없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지만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 대목이다. 주말은 평일보다 국민들의 뉴스 주목도가 떨어져 여론의 집중과 파문 확산을 피할 수 있다.

회의록 초본, 수정본, 국정원본의 성격에 대한 검찰 판단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다. 검찰 스스로도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면서 초본은 대통령기록물로 분류하고 수정본·국정원본은 대통령기록물로 보지 않았다. 검찰 판단대로라면 초본을 삭제, 미이관한 참여정부 인사와 국정원본을 열람, 공개한 의혹을 사고 있는 새누리당 의원에게는 다른 처벌조항이 적용된다. 대통령기록물을 무단 파기, 유출하면 최고 징역 10년이지만 공공기록물은 직무상 이유로 열람이 가능하다.

검찰의 이러한 판단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정권 눈치 보기와 권력에 줄 서는 모습을 빗댄 ‘정치 검찰’이라는 단어가 검찰 주변에 다시 맴돌고 있다.

ikik@seoul.co.kr

2013-11-1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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