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뒤가 걱정되면 투자고 뭐고 없다/최용규 산업부장

[데스크 시각] 뒤가 걱정되면 투자고 뭐고 없다/최용규 산업부장

입력 2013-07-02 00:00
수정 2013-07-02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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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규 산업부장
최용규 산업부장
2005년 겨울, 정통부 출입기자로 적(籍)을 올렸을 때의 일이다. 다른 건 기억이 안 나도 “지난 건 몰라도 돼요”라는 이 한마디는 지금도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KT 직원의 이 ‘한방’은 당시 정보기술(IT) 초짜였던 나에겐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때 분위기로는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고, 과하지도 않았다. 한국의 IT 기술은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하루하루가 달랐다. 세계시장의 테스트베드라고 우쭐대도 노(NO)라고 강하게 치고 나올 나라가 없었다. IT 국제표준을 ‘한국형’으로 하겠다고 덤벼들어도 한두 나라 빼고 태클 거는 나라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잘나간 게 어디 IT뿐이랴. 그때는 10대 주력 수출품 중 죽을 쑤는 업종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었다. 현대·삼성·대우 등 글로벌 조선 3사는 밀려드는 일감에 입맛에 맞는 배들을 골라서 수주했다. 이렇게 배짱을 내밀어도 주머니 빵빵한 전세계 유력 선주들은 ‘빅3’ 조선사에 물건을 맡기지 못해 안달했다. 창고에 쌀가마니가 빽빽하게 쌓여 있듯 일감은 차고 넘쳤다. 회사 이익도 허리 굵어지듯 탱탱하게 불었다. 글로벌 반열에 오른 철강도 중국을 우습게 봤다.

계속 잘나갈 줄만 았았다. 그러나 그게 환상이라는 사실을 아는 데는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6~7년 전 장밋빛은 흙빛으로 변했다. 지금 우리 산업계는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 조선은 물론 철강·해운 다 거꾸러졌다. ‘슈퍼갑’ 조선은 ‘을’ 신세로 전락했다. 뱃값을 깎아달라고 으름장을 놓는 선주들에게 받은 돈 일부를 돌려주고 있다. 옛날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꼬리 내린 게 조선만이 아니다. 해운사는 자식 같은 배를 내다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장을 도려내는 것과 다름없다. 철강업체는 “현재의 상황은 공포에 가깝다”고 기겁을 한다. 그나마 전자나 자동차가 버텨주고 있지만 이도 장담할 수 없다. 삼성이나 LG를 어린애 취급하던 노키아가 저렇게 몰락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데도 정부는 장밋빛 경제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월 발표 때의 2.3%보다 0.4% 포인트 높은 2.7%로 높였다. 정부가 나름대로 근거를 대고 있지만 정작 재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전경련이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금융위기 때인 2008년의 상황보다 낫다고 응답한 기업은 23.1%에 불과했다. 올 하반기에 경제회복이 될 것이라고 보는 기업은 7.9%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의 기대와 달리 좋아질 게 별로 없는 게 ‘팩트’에 가깝다. 내수도 극심한 부진을 보이고 있다. 미국 경제가 저점을 지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나 지갑을 열 정도는 아니다.

이런데도 정치권이나 당국은 ‘기업 때리기’에 열중이다. 질 좋은 일자리는 누가 만드나. 다른 말 할 필요 없다. 기업이다. 정부 예산으론 언감생심이다. 투자는 환경이다. 서슬 퍼런 칼날이 등 뒤에서 휙휙 춤추고 있는데 마음 놓고 본업에 충실할 수 있는 간덩이 부은 기업인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라. 앞만 보고 가는 데는 뒤에 걱정거리가 없어야 한다. 기업이 일로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을 때만이 창조경제도 가능하다. 이제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워서야 되겠는가.

ykchoi@seoul.co.kr

2013-07-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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