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우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그러나 형식 논리와 법적 결백만으로 국민들의 마음의 앙금과 그 유리감을 씻어내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그의 사퇴를 양식 있는 선택이며 결단으로 평가한다. 그가 결백함을 내세우며 청문회를 강행했다면 국민정서와 관계없이 총리에 올랐을 것이고, 그러한 기준은 박근혜 정부의 고위 인사 선정에도 줄곧 적용됐을 가능성이 컸다. 새 정부의 첫 총리 인사는 선례며 준거가 되는 까닭이다.
이명박 정부에선 실정법 위반인 위장전입이 고관대작 선임의 흠이 되지 않았다. 그 전 정권 때 총리 후보자에게 위장전입의 죄를 물어 망신을 주고 낙마시킨 것과는 차이가 컸다. 실정법 위반임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도덕적 잣대가 물러진 것은 이 대통령 자신의 위장전입 ‘전과’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물러진 고위공직자 인선 기준을 사회적 관용의 확대로 봐야 할까 도덕적 퇴락으로 평가해야 할까.
법을 어겼는데도 사과는커녕 “관례였다”고 둘러대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당당함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지도층의 집단 윤리의식 마비 수준을 확인하게 한다. 지도자의 도덕적 기준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절절하게 보여준다. 박근혜 정부가 양보해선 안 될 가치와 기준이 무엇인지도 알려주는 타산지석의 예다.
느슨한 도덕적 분위기는 측근 부정과 고관들의 일탈을 싹 틔우는 토양이다. 국정에 전력투구해 온 이 대통령의 노력이 평가절하되고 농담 속 조롱거리로 전락한 것은 뭣 때문인가. 권력의 바탕은 도덕과 윤리며 이에 기초해서 사람을 쓰고, 리더십을 행사하겠다는 엄정함이 미약했던 탓은 아니었을까.
‘구중궁궐’에서 귀에 편한 소리만 하기 쉬운 측근과 보좌진에게 둘러싸일 박근혜 당선인에게 그래도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경륜과 조건을 지닌 총리 후보자의 낙마가 아쉽기는 하다. 그렇지만 “의혹이 남아 있을 때 공직엔 적합하지 않다”는 선례가 쌓여갈 때, 기성세대를 아귀다툼의 아수라장에서 처세와 눈치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버티는 자들로 볼 젊은 세대의 시선을 조금은 누그러뜨려 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김용준의 사퇴는 개인사를 넘어 우리 사회의 양식과 도덕 회복을 위한 사회적 성찰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값지고 소중한 역사로 남을 것이다. 그의 사퇴를 박근혜 당선인의 타협하지 않는 원칙 수호 의지와 도덕적 결의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그렇다면 더욱 다행스러운 일이다. 인사는 만사고, 그러한 인사의 단추들을 서슬 퍼런 윤리와 도덕의 잣대 위에서 꿰어나갈 때만 건강함과 성공을 기약할 수 있다는 믿음과 선례가 박근혜 정부에서 굳건해지고 상식이 되기를 기대한다.
jun88@seoul.co.kr
2013-01-3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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